박다애 / 독립기획자, PUBLIC PUBLIC 퍼블릭아트 리서치 디렉터
daae0630@gmail.com
코로나 시대, 사회 속 사람 간의 대화, 그리고 감정
코로나 시대, 함께 모여 먹고 마시며 교류하기를 좋아하는 사회성 동물인 인류는 한 순간에 그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직접 대화가 단절된 사회에서 새롭게 적응해야만 했다. 공동지식 공유와 대화의 기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한 지는 오래지만 (심지어 함께 먹는 행위도), 그 이동과정과 근원이 확실할 때와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타자에 의해 조성된 상황일 때의 인류가 느끼는 감정은 엄연히 다를 것이다. 하나,둘 씩 단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적응과정 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급작스럽게 접어든 이 끝을 알 수도 없는 새로운 형국에 대한 불안감은 곧 특정집단을 향한 원망과 기피, 심지어 혐오감으로 까지 번져갔다. 특정한 근원에 대한 설명이 생략된 미스테리 같으나 그로 인한 존재감은 매일의 일상 속에 가시처럼, 혹은 생명과 생업의 위협이 될 정도로 실재하는 그것에 대해 꼭 원망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. 인류는 원래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문제에 맞닥뜨릴 때,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고 그 인과관계는 작고 가시적일 정도로 구체적인 것을 선호한다. 그것이 분명하지 않거나,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 상의 문제라고 생각될 때에는 커다란 무기력과 불안감을 경험하게 된다. 따라서 학자들은,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비난하는 것이 불안을 일시적으로 나마 완화하는 역할(palliative role)을 한다고 한다. 그리고 대개 그 비난대상은 종종 여성,외국인,성소수자, 등등의 사회 구조 상에서 다수가 아닌 소수의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다. 그렇게 사회는 암묵적 동의 하에 어떠한 집단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그 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서로 인정하기로 한다. 그러나 그 누구도 문제의 실체와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알고자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니, 개개인을 하나의 대상으로 싸잡아 묶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. 특정인종에 대한 기피와 혐오감은 인류역사 상 항상 존재해왔지만, 코로나시대 미디어와 일부 정치인들은 이미 존재해왔던 그 감정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확신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. 그렇게 국가 간, 정부 간의 전략과 음모는 개개인의 감정으로 사회 전체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게 되었다.
